누진제 완화 혜택은 ‘일종의 외상’…“결국 소비자가 부담 떠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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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에너지단열경제]김슬기 기자=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완화하는 개편안이 가결된 가운데 이를 놓고 업계, 전문가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분분해지고 있다.
특히 경영 악화를 겪고 있는 한전은 낮은 전기료가 에너지 비효율, 과소비를 불러일으킨다는 요인을 근거로 전기가격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는 입장이다.
반면 회사 적자에 대한 심각성은 과장된 상태로 이보다는 소비자에게 돌아올 부담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누진제 완화로 받는 당장의 할인 혜택은 ‘일종의 외상’으로 이는 결국 국민이 갚아야 할 몫이라는 지적이다.
◆ 한전경영연구원 “韓 에너지 이용효율 OECD 최하위…전기요금 정상화해야”
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산하기관으로 에너지 분야 씽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전경영연구원이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한전 경영연구원이 공개한 ‘전력경제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는 0.159(2017년 기준)로 확인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33번째로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에너지 원단위는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1차 에너지 소비량(TOE)을 말하는데, 수치가 높을수록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보다 에너지 원단위가 높은 국가는 캐나다(0.183), 아이슬란드(0.368) 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경영연구원은 “우리나라의 낮은 전기료가 에너지 비효율, 전기 과소비를 유발하고 있다”며 “원가 반영이 제대로 안 되는 ‘가격 시그널’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선 전기 구입단가와 수매 판매단가의 디커플링(Decoupling·비동조화) 현상이 언급됐다. 전기를 생산하는 액화천연가스 등 발전용 원자재 가격은 변동성이 크지만 한국은 이를 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전기 생산원가가 상승해도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는 구조다. 이 때문에 석탄ㆍ석유ㆍ천연가스 등 다른 1차 에너지 대신 이를 갖고 생산한 2차 에너지인 전기를 우선 소비하게 되거나, 전기 과소비가 유도된다고 경영연구원은 지적했다.
경영연구원은 “가격 정상화를 위해 도매가격 연동제와 친환경 이행비용 부과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매가격 연동제는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재 가격 변화를 전기요금에 적용하는 것으로 현재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 다수 국가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다. 친환경 부과 방안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것이다.
한전의 전기료 인상 주장은 앞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작년 김종갑 사장은 SNS를 통해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더 싸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올해 초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도 “전기소비와 자원 배분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요금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거듭된 인상 주장은 작년 6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회사 경영상황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그간 언론을 통해 펼쳐져 왔다. 한전은 지난 2016년 연간 당기순이익 7조 원대를 기록했지만 작년엔 거꾸로 당기순손실 1조 원대를 기록했다. 올 1분기에도 6299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어닝쇼크’를 기록하기도 했다. 누진제 개편안으론 매해 2,847억 원의 추가 부담도 떠안게 돼 경영상황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누진제 완화 부담은 결국 ‘소비자 몫’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누진제 완화로 인한 부담은 회사가 아닌 소비자 몫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노동석 박사는 <에너지단열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전은 경영이 나빠졌다고 해서 부실회사가 되거나 직원 월급이 깎이지는 않는다”며 “일부 언론 등에선 한전이 2~3년 전만 해도 초우량 기업이었는데 갑자기 부실기업이 됐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로 인한 부담은 전기 소비자가 낼 몫이다”며 “일종의 외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기를 많이 써서 누진제 완화로 혜택을 많이 본 소비자와 덜 쓴 소비자가 (손실을 메꾸기 위해 향후 시행될 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을 골고루 나눠 가지게 된다”며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고) 고소득자라고 말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론) 그들을 지원하는 꼴이 된다”고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편 앞서 지난달 28일 한국전력 임시이사회는 여름철(7·8월) 전기요금을 월 1만 원가량 깎아주는 내용의 ‘누진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날부터 새로운 요금제를 적용해 1629만 가구에 월평균 1만142원 전기요금을 할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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