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ESS 화재…관련 업계 고사 위기

안전 / 김정관 / 2019-05-02 11:19:29
산업부 “제품 종류 많고 대부분 전소돼 규명에 어려움”
다음달 원인 조사 결과 발표 때까지 불안감 계속될 듯

[에너지단열경제]김정관 기자= 신재생에너지 정책 확대에 필수적인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화재가 잇따르고 있으나 정부가 화재 원인 조사결과 발표를 미루면서 불안감만 확산되고 관련 업계는 고사 위기에 놓였다.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꼽히는 ESS 시장에서 한국의 선도국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017년 8월 첫 화재 이후 2018년 5월까지 화재가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민관 합동으로 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켜 ESS 구성품과 시스템에 대한 집중 조사를 실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는 총 21건의 ESS 화재에 대해 검증에 들어가 당초 지난 3월 조사결과를 공개하기로 했으나 발표시기를 6월초로 미뤘다.


그 사이 ESS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면서 관련 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자체에도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는 2일 부랴부랴 중간 브리핑을 가졌다.


산업부는 다음 달 초 정확한 화재 원인과 함께 안전대책, ESS 산업 생태계 육성방안을 동시에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피해가 커질 대로 커진 ESS산업에 얼마나 영향을 줄 지는 미지수다.

 

◇ 원인불명 ESS 화재 잇따라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는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태양이 없는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 등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때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꼭 필요한 장치다.


국내 ESS 시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발맞춰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 에너지부(DOE)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전 세계 ESS 설치용량을 살펴볼 때 미국이 452.6MWh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142.4MWh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산업부가 집계한 지난해 상반기 국내 ESS 설치량은 1.8GWh로 전년 동기(89MWh)보다 무려 20배나 늘었다. 산업부는 2018년 기준 세계 ESS 시장에서 국내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국내 ESS 산업은 원인 모를 화재로 제동이 걸렸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변전소에서 처음 시작한 화재사고는 지난해 5월 경북 경산시, 7월 경남 거창군, 11월 경북 문경시, 12월 강원 삼척시 등에서도 계속됐다.


특히 작년 5월 2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 사이에 발생한 ESS 화재사고는 무려 20건에 달한다.
ESS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 전국 1천300개 사업장에 대한 안점점검에 나섰다.

 

▲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설에 대한 화재가 잇따르자 소방당국이 관련 시설에 대한 집중 점검에 나섰다. 사진은 신열우(오른쪽) 소방청 차장이 지난 2월 20일 경남 밀양 한국전력공사 밀양지사를 찾아 ESS 시설에 대해 소방점검을 하는 모습. /소방청 제공


이어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ESS에 대해 가동중단을 요청했고, 지난 1월 22일에는 민간사업장에도 별도의 전용 건물이 설치되지 않았을 경우 원칙적으로 가동을 중단해달라고 권고했다.


보다 투명하고 정확하게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자 전기, 배터리, 소방 등 분야별 전문가 19명으로 구성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조사위는 사고현장 조사·분석 결과를 토대로 21건의 사고를 유형화했고, 업계 의견을 반영해 ESS 구성품과 시스템에 대한 실증 시험을 시행 중이다.


산업부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화재 원인을 모사한 고창·정읍 실증시험장에서 실제 화재사고와 유사한 상황이 관측돼 정밀 조사·분석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ESS는 화재 시 전소하는 특성이 있고 여러 기업의 다수 제품이 관련돼 사고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시험·실증을 조속히 완료해 6월 초 조사결과를 발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 ESS 관련 업계 피해 눈덩이
ESS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맞춰 ESS에 대한 투자를 늘렸던 업계는 잇따른 화재로 시설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ESS 시설 1천490곳 중 35.0%에 해당하는 522개가 가동을 멈춘 상황이다. 지난 3월에는 제조사의 자체 가동중단 조치로 765개 사업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내 산업용 에너지저장센터. /현대중공업 제공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 ESS 신규 설치 발주는 사실상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SS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주요 대기업의 올해 1분기 실적은 곤두박질했다.


삼성SDI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1분기 실적에서 영업이익이 1천299억원으로, 전분기보다 52.2% 감소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중대형 전지사업 부문에서 국내 ESS 수요가 부진했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LG화학은 1분기 전지사업 부문에서 계절적 요인과 함께 ESS 화재에 따른 일회성 비용이 발생하면서 적자를 냈다. 설비 점검과 가동손실 보상 등에 따른 충당금 800억원과 국내 출하 전면 중단에 따른 손실 400억원 등 ESS 관련 기회손실이 1분기에만 1천2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LS산전도 1분기 영업이익이 2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3%나 감소했는데, ESS 신규 수주 급감에 따른 융합사업 부문 실적 부진을 주된 요인으로 지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화재조사가 늦어지는 데 대한 볼멘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화재 원인과 안전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공장을 재가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급과 수요 양 측면에서 ESS 산업 밸류체인별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잇단 화재사고로 보험료도 오르고 있어 ESS 관련 기업의 부담을 완화할 전용보험상품 출시 등 지원대책을 검토중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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