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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수 사장 |
엇그제 동사무소를 찾아갔다가 공무원 나리(?)에게 되통 당했다. 참, 동사무소가 아니라 행정복지센터다. 얼마 전까지 주민센터라고 부르는 것 같더니 또 간판을 바꿔달았다. 아무튼 그곳 동사무소에서 행정복센터로 바뀐 기관의 수장은 위민행정과 거리가 아주 먼 전형적인 관료였다. 비단 행정복지센터 뿐만이 아니다. 내가 자주 가는 우체국도 여전히 공무원 티를 낸다. 오히려 지자체 공무원들보다 더 심하다. 심지어 농협 창구 직원들조차도 다른 금융기관 직원들과 달리 알량한 공무원 흉내를 낸다.
이른바 ‘관존민비’ 의식은 조선시대 얘기가 아니다. 공복의 자세는 공무원시험에서나 등장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선민의식이 아주 강하며, 갑질 행태도 여전하다. 상당수 공무원들은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쓰면서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공무 연수를 핑계로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1년에 한 두 차례씩 해외에 나가 공금을 펑펑 쓰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연말이면 ‘배정된 예산을 모두 써야 다음 해 예산이 깎이지 않는다’며 멀쩡한 보도블럭을 바꾸는 공사를 최근 몇 십년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지켜봤다.
그런데 공무원에도 ‘급’이 있다. 이른바 고위 공무원, 특히 법이라는 이름으로 칼자루를 쥔 고위 공무원은 왕중왕이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뭉칫돈을 받았어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죄가 아니고 벌을 내릴 수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뇌물 뿐 아니라 성상납도 유야무야다.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K-팝 가수가 뭇 여성과 성관계를 갖고 동영상을 찍어 단톡방에 올린 사실이 들통나자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6년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은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정권이 바뀐 현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국가의 헌법상 원칙이다. 과연 그럴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 접대’ 의혹은 헌법 위에 존재한다. 이 사건은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문을 무색하게 만든다.
건설업자 윤 모씨가 강원도 원주 인근 별장에 유력 인사들을 불러 은밀하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추악하고 비열한 사건이다. 수영장에 사우나와 노래방 시설까지 갖춘 호화별장에 공무원들을 불러 접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음험했다. 여기에 아가씨들까지 불러 성접대를 하고 동영상을 찍었다는 것은 가수 겸 방송인 정모씨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 접대’ 의혹은 문재인 정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 15건 가운데 하나다. 진상조사를 벌인 사건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인권침해 및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중에서 추려낸 것들이며, 이 중 ‘별장 성 접대’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불러온 사건이다. 김 전 차관은 당시 의혹이 제기되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윤 씨를 사기·경매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김 전 차관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밝혀진 경찰과 피해자의 진술은 검찰이 서둘러 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검찰은 성 접대 증거 중 하나인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 그러나 경찰의 얘기는 다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흐릿한 영상은 (2013년) 3월에 입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고, 명확한 영상은 5월에 입수했는데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서 감정 의뢰 없이 동일인이라고 결론 내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검찰이 이를 뭉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검찰은 ‘동영상 속 피해 여성을 특정하지 못한 점’을 무혐의 결정의 또 다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 여성은 검찰 조사 때 사실대로 얘기했는데도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의 증거누락과 전·현직 군 장성 연루 의혹 등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사건의 전면적인 재조사가 불가피해졌다. 조사단은 당사자에 대한 직접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김 전 차관을 소환했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수사 권한이 없어 강제구인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는 경찰 수사과정에서도 소환 조사에 불응한 바 있다. 일반 시민에게는 엄격한 법이 김 전 차관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정권이 바뀐들 공직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나라는 그대로다. 사법당국은 이제라도 대오각성하고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또한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정권을 위임받은 정부는 국가기강을 바로세우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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