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보는 역사 이야기

기획특집 / 안조영 기자 / 2020-02-14 06:23:12

기후변화로 보는 역사 이야기


기원전 7~9세기경 중동 지역을 호령하던 대제국 신아시리아가 기후변화 탓에 멸망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작물 수확량 감소가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기원전 912년경 부상한 신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로 영토를 확장해가며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기원전 630년경 아슈르바니왕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기 시작한 제국의 운명은 거대 도시 니네베를 빼앗긴 후에는 급격히 쇠락해 기원전 612년 완전히 몰락했다.
당시 농업에 크게 의존하던 신아시리아 제국의 성쇠는 이 일대 기후변화 패턴과 일치한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약 200년간의 많은 강수량과 그로 인한 높은 수확량이 도시의 고밀도화와 제국의 팽창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이후의 대가뭄 상황에서 지속될 수 없는 정도였다”고 밝혔다.
내전과 급격한 도시 팽창 역시 제국의 붕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작황 감소로 인한 경제 악화가 정치 불안과 갈등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북부의 동굴에 있는 석순의 산소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당시 강수량을 추정, 기원전 925년에서 기원전 550년 사이 두 개의 분명한 기후 국면을 발견했다.
기후가 훨씬 습했던 기원전 850년~기원전 740년은 신아시리아의 팽창기와 비슷하며, 반면에 대가뭄을 겪었던 기원전 675년~기원전 550년 사이는 제국이 빠르게 몰락해가는 시간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간빙기와 농경사회의 탄생도 기후변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현세와 가장 가까운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160만~12,000년 전)와 홀로세(12,000년 전~현재)로 나뉜다.
플라이스토세의 마지막 시기에는 거대한 얼음판이 유럽과 북미 대륙의 북반부를 덮고 있었다. 지구 평균기온도 지금보다 5℃ 정도 낮았다.
알래스카는 시베리아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일본, 영국, 호주 등 많은 섬들이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다.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다.
빙하시대가 끝나고 홀로세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전 지구적으로 온도가 1℃ 범위 내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매우 안정된 기후 덕분에 홀로세 이전의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올 수 있었다.
빙하기 때의 강수량은 현재에 비해 25~50% 정도였다.
그러나 홀로세 동안에는 강수량이 증가하고 기후변동성이 줄었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경계인 BC 12,000년부터 지구 상의 온도가 상승해 빙하가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2,000년 후 빙하가 녹은 물로 인해 소빙하기가 찾아왔다.

BC 10,000 경부터 약 1,000년간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거의 빙하시대로 되돌아갔다.
이 시기를 영거 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 Period)라 부른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스칸디나비아와 캐나다의 빙하가 녹기 시작했다.
현재의 북미대륙 내부에 위치했던 거대한 호수 아가시호(Lake Agassiz)의 빙하가 녹으면서 범람했다.
이렇게 생겨난 엄청난 양의 담수가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로 인해 북대서양 고위도의 표층해수 밀도가 매우 낮아졌다.
밀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해양 심층 해류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전 지구의 해양순환은 그린란드 부근의 대서양에서 아주 차갑고 밀도 높은 바닷물이 밀도 차로 인해 깊은 바닷물로 떨어져 내리면서 시작한다.
이로 인해 깊은 바다 밑에 거대한 심해 해류가 생기는데 이를 열염대순환이라고 부른다.
이 심해 해류의 순환이 이루어져야 표층의 난류 흐름이 생긴다.
BC 10,000년경, 고위도의 바닷물 염도가 낮아지면서 바다 깊숙이 떨어지는 흐름이 사라진 것이다.
이 흐름이 사라지면서 심층 해류의 순환이 멈추었고 따라서 표층의 난류 흐름도 멈추게 되었다.
북반구의 영국이나 노르웨이, 북미의 고위도 지역도 거대한 난류의 흐름이 있기에 따뜻하다. 이러한 난류의 흐름이 멈추면서 전 지구적으로 소빙하기가 찾아온 것이다.
영거 드라이아스 빙하기는 기온이 따뜻해지던 지구를 강타했다.
수많은 생물종들이 멸종 사태를 맞았다.
해류의 순환이 멈추면서 산소 부족으로 바닷물이 썩게 된다.
엄청난 생태계 파괴가 뒤따르는 것이다.
1천 년 이상 지속된 영거 드라이아스 소빙하기가 끝나면서 기온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일사량이 증가했으며 대기의 평균온도가 약 0.5~1℃ 상승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270ppm이었다.
대기 순환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몬순의 강도가 증가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강수량이 약 25% 증가했다.
인류의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이때와 일치한다.
이 당시 동물종의 변화도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매머드 같은 거대 초식동물이 멸종했다.
매머드의 멸종은 그 당시 점점 따뜻해지던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빙하시대가 끝나고 삼림이 확장되면서 툰드라 지역 등에 살던 매머드의 서식공간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증발을 잘 못하는 피부를 가진 매머드에게 온난화에 따른 습도의 증가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BC 6,000~BC 3,000년은 가장 온화했던 시기로 기후최적기라고도 부른다.
평균적으로 온도가 현재보다 2~3℃ 높았다.
급격한 기후의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기 시작해 빙하기보다 100m 이상 상승했다.
또 넓은 범위에 걸쳐 식생의 변화가 일어났다.
빙하작용을 받았던 유럽 서부에서는 툰드라 식생이 보레알 숲(Boreal forest, 북부 한대수림)으로 대체되었고, 이후 다시 참나무·느릅나무·개암나무와 같은 활엽수로 대체되었다.
이 시기에 활엽수들은 북아메리카와 유럽 북부에서 모두 현재보다 북쪽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또 지금보다 나일 강의 수위가 7m나 높았다.
현재는 매우 건조한 아프리카·아라비아·인도에 걸쳐 고수위의 호수들이 존재했었다.
차드 호의 면적은 지금의 수십 배에 이르렀다.
이는 오늘날에 비해 기후가 훨씬 온화하고 습윤했음을 나타낸다.
당시엔 사하라 사막 중심부의 강수량이 200~500mm에 이르렀다.
사하라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린 것은 기압계의 변화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아열대 고압대가 지금보다 훨씬 북쪽으로 위도 40도 부근까지 올라갔었다.
이럴 경우 현재 사하라 사막이 있는 위도 30도 부근은 여름에 비가 오는 열대몬순의 영향을 받게 된다.
빙하시대에는 지중해와 흑해가 갈라져 있었다.
지금의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흑해의 해수면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원전 6,400년경 갑자기 지중해와 흑해가 합쳐졌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지중해의 물이 엄청난 속도로 흑해로 밀려들어갔다.
이로 인해 상승된 해수면이 흑해 연안의 마을들을 물밑으로 잠기게 했다.
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이 시기에 고대문명이 발생한다.
고대문명이 발생한 곳은 큰 강을 끼고 있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기후최적기에는 기온도 온화하고 비도 많이 내려 농업에 큰 지장이 없었다.
다만 천수농업에 의지했기에 연간 250mm 이상의 강수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점차 기후가 변하면서 가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사람들이 강 옆으로 모여들면서 마을 등에 인구 집중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주기적인 한발에 대처하기 위해서 유프라테스 강가의 평지에 관개용수로 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점차 관개시설은 대규모화하기 시작했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운하를 파고, 새로운 농지를 간척했다. 겨울에는 용수로를 열고 물을 담아, 봄철의 농사에 대비했다.
이처럼 거대한 관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해졌다.
6㎢의 토지에 거대한 신전이 들어서고, 5~8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가 탄생한 배경이다.
북아프리카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기후최적기에 사하라 지역의 유목민들은 습윤했던 초원지대를 이동하면서 살아갔다.
그러나 점진적인 기후변화로 사하라 지역도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결국 이들은 목축을 포기하고, 나일 강가에 모여들어 농업을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나일 강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홍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여기에다가 나일 강물을 농토로 분배할 수 있는 기술과 지도력이 필요했다.
BC 1,500년경에 또 다시 한랭하고 건조한 기후가 닥쳤다.
이 시기의 한랭건조화는 화산폭발 때문이었다.
화산폭발로 성층권에 치솟은 분출물이 태양복사를 막아 지구기온을 하강시켰다.
당시 지구평균기온이 3℃ 정도 하강한 것으로 본다.
가뭄과 한랭화 등의 기후변화는 국가 문명을 탄생시켰다.
관개사업이라는 대규모의 토목공사, 물 분배 등을 위한 법과 지도자가 필요해졌다.
명령의 전달과 물 분배 등의 기록을 위해 문자가 만들어졌다.
관개농업으로 식량생산이 증가하면서 정치, 종교 지도자들 같은 비생산 인구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랭건조기의 가혹한 기후 조건에서 번성한 문명도 있었다.
바로 BC 1,500년부터 BC 300년까지 번성한 페니키아(Phoenicia) 문명이다.
이들은 중동의 레반트 지역에 위치했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는 기후가 좋았다.
그러나 큰 강이 없어 관개가 불가능했다.
따라서 주식인 곡물을 얻기 위해 무역을 하게 되었다.
당시 중동에는 배를 만들 나무가 풍부했다.
인류 최초의 상업문명이 탄생한 것이다./안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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