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제품은 국민 여론 수렴 없이 일방적인 준불연 강화로 생산 막아
일자리 창출한다는 정부, 중소기업 도산시켜 오히려 수만 명 일자리 없애
페놀폼보드 부직포면
<대기업 제품 페놀폼, 그라스울 등은 막대한 자본과 정부 규제로 시장 급격히 확대해>
<1군 발암물질 논란 LG하우시스 페놀폼, 건강 유해 여부에 대한 정확한 결론 못내>
“대한민국에는 대기업만 있고 중소기업은 없다”
단열재 중소 생산업체들이 한목소리로 내는 이야기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이후 계속돼 온 단열재의 화재 안전 성능 강화 조치에 따라 대다수 유기단열재 생산업체들은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
특히 오영환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건축법 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스티로폼과 우레탄폼을 이용해 단열재를 만들어 온 중소업계는 경영의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번 건축법 개정안의 주 내용은 향후 복합자재의 심재도 준불연 등급을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상용화된 유기단열재 심재 가운데 준불연 성능을 만족시키는 제품이 없는 만큼 시장에서 퇴출하라는 의미다.
즉, 유기단열재 생산 공장은 문을 닫으라는 것이며 상대적으로 그라스울 등을 만드는 무기단열재 생산회사들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한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생산업체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정부 방침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준불연 성능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돼야 하는데 중소기업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소업체들은 그 무엇보다도 단열 성능과 효용성이 우선인 단열재의 존립 취지마저도 부인하는 일방적인 조치에 대해 독재 수준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
화재 안전이라는 명제 하에 신제품을 준비할 기간도 주지 않고 입법 예고 기간이 지나면 즉시 시행되는 이번 법안의 졸속 조치에 대한 반발은 당연하다.
덧붙여 정부가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보여 주던 이중적 잣대에 상대적 박탈감마저 커져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에게는 한없는 아량을 보여주었던 정부가 힘없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숨 쉴 겨를도 없이 너무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는 입장이다.
실제 업계는 형평성을 잃은 정부의 여러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먼저 유기단열재 제품 가운데 대기업인 LG하우시스가 생산하는 페놀폼을 언급한다.
수년전부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포름알데히드(WHO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의 적정 기준치 초과 논란을 일으킨 제품이다.
허용 기준치를 많게는 수십 배 초과 방출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와 국토부와 환경부가 조사에 나서면서 정확한 결론을 국민들에게 조속히 내주겠다는 답변을 했으나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그저 논란의 당사자인 생산 대기업측이 여타 성능시험기관들에게 제품을 의뢰한 결과라며 아무 문제가 없으니 사용해도 된다는 메시지만 지속적으로 보냈다.
객관적이고 감시 권한을 지닌 정부가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석연찮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공인된 성능 시험기관 몇 군데를 선정한 후 시공 현장에서 가져온 페놀폼을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단체를 참석시켜 검증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쉬운 절차가 수년이 지났음에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의문을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다.
중소 단열재 업계는 정부가 혹시라도 객관적 시험 성능을 했다가 허용기준치를 초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시간만 끄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지니고 있다.
만일 중소기업 제품이었다면 우선 제품 사용을 막고 빠른 시간 안에 결론을 냈을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다.
여기에 화재 안전 성능 검사의 절차도 문제를 삼고 있다.
페놀폼보드는 일반적인 유기단열재 제품과 달리 한쪽 면은 은박지가 부착돼 있는 이종단열재다.
한쪽 면은 콘크리트 벽에 본드로 접착하는 부직포가 붙어 있고 반대편 면은 은박지가 부착 돼 건물 외벽 시공 시 바깥으로 보이는 쪽이다.
문제는 은박지면은 준불연 이지만 부직포면은 준불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만간 앞과 뒷면에 측면까지 화재 안전성능을 검사하는 법안이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현재도 앞뒷면 두 군데를 성능 시험하게 규정하고 있다.
업계의 주장은 성능 검사기관에서 이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한쪽 면만 검사해 준불연 성능으로 통과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대기업의 막강한 힘이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페놀폼보드
<석면 제거에 한해 세금 수천억 원 쓰면서도 생산자였던 KCC와 벽산에는 아무런 조치 없어>
대기업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사례는 과거에 석면을 생산했던 업체들인 KCC와 벽산이다.
이들 업체들은 지금은 그라스울 등을 생산하고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무기단열재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 석면의 폐해로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건이 있다.
통신병과 장교로 군 복무하다 지난 2018년 서른네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모 대위가 수년이 지나 석면과 폐암의 인과관계가 인정돼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군 복무 중 7년간 일주일에 4~5회 석면이 들어간 천장 마감재를 뜯고 전기선, 통신선을 보수하고 설치했었다.
당시 건물의 천장에서는 석면 함유량이 허용 기준치의 5배가 넘게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 이후 국방부는 전수조사를 실시해 1만1600여동의 석면 함유 건축물을 확인했다.
2018년 이후 군은 매년 수백억 원 이상을 투입해 석면 함유 건축물 해체와 제거를 하고 있다.
지난 박정희 정권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지붕이 개량되면서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가 전국 곳곳에 사용된 바 있다.
이후 학교나 체육관 및 관공서 등 웬만한 건물에는 석면이 함유된 건축 자재가 방음재와 단열재로 사용됐다.
석면이 폐암 등을 일으키는 1군 발암물질로 확인되면서 유럽은 1980년대, 미국과 일본 등은 1990년대부터 사용이 금지됐으나 우리나라는 수십 년이 지난 2009년부터 금지 품목이 됐다.
이 와중에 석면 슬레이트나 석면 건축 자재를 생산했던 업체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이들 업체들이 회사명을 바꾸고 그라스울 등을 생산하는 건축 자재 대기업이 됐다.
그라스울 패널
반면에 환경부 등 정부는 매년 수천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 학교와 관공서의 석면 함유 자재는 물론 시골 마을의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발암물질이 방출되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전부 제거해야 하나 예산 부족으로 속도가 더디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 석면 함유 자재 생산업체가 나서야 하나 고스란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개발 정책과 지원에 맞춰 생산하고 판매했던 건축 자재였던 만큼, 국민의 건강에 심대한 위협을 주고 있으니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
단열재 업계 종사자들은 당시 제품을 생산했던 기업들이 어떤 형태로든 조속한 석면 철거에 함께 나서고 석면으로 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기여와 보상을 해야 한다는 데에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강력한 입장 표명이 없다.
건강을 위협하는 중소기업의 제품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난과 강력한 조치를 내놓았던 것과 비교된다.
실제 사례로 라돈 방사능 허용 기준치 방출로 결국 문을 닫은 침대 매트리스를 생산했던 중소업체를 들고 있다.
발암물질 방출로 국민적 관심이 일자 속전속결로 제품 사용 금지 조치와 함께 정확한 검증을 진행했던 것과는 너무나 태도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또 인체 유해 물질이 나왔던 여타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와 달리 페놀폼이나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석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중소 단열재업계,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편파적인 정책과 감독 소홀로 신뢰 잃어가고 있다”>
중소업체가 주류인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업계는 국민 여론 수렴 한번 없이 진행된 정부의 일방적인 규제로 직격탄을 맞으며 생존의 기로에 놓여있다.
반면 대기업이 생산하는 페놀폼과 그라스울 등은 막강한 자본과 함께 오히려 규제 강화 조치에 힘입어 급속하게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중소 단열재 생산업계는 현재의 경제적 위기 상황도 힘들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 잣대가 상대적 박탈감마저 안겨줘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유기단열재 생산업체 A대표는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편파적인 정책과 감독 소홀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며 “특히 일자리 창출을 내걸고 있는 현 정부가 중소기업을 도산시켜 오히려 수만 명의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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