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건설현장 화재안전 범정부 TF’ 단열재 관련 검토 안

단열 / 이승범 기자 / 2020-05-25 10:31:10
모든 창고와 공장, 난연 이상 성능 마감재와 단열재 사용 규제
공개 토론 한번 없이 자동차 사고 났다고 자동차 없애자는 논리
섣부른 규제 중소기업 죽이는 교각살우 초래
전문가, 업계, 국민 참여 공청회 등 의견 수렴해야

[에너지단열경제]이승범 기자 

이천화재현장 


48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 달 29일의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국무조정실장을 단장으로 한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한 '건설현장 화재안전 범정부 TF'가 가동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조속하게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던 만큼 TF는 최대한 빨리 결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범정부 TF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건설현장의 화재 안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 번째는 작업 중의 안전 대책 등 공사 환경의 개선이며 두 번째는 단열재의 규제다.
먼저 공사 환경의 개선을 위한 대책들은 그동안 대형 사고 때마다 거론됐던 것으로 크게 무리가 없다는 여론이다.
용접작업이나 가연성 물질을 다루는 작업은 동시 작업을 금하고 감리자의 입회하에 작업 안전성을 확인하게 한다.
원가나 공정관리 업무를 겸임하지 않아 실무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는 안전 전담 감리를 모든 공사에 배치한다.
여기에 재해보험 가입 의무화, 무리한 공기단축 배제,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 등의 방안 등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8년 이천 화재 이후 학계 등 전문가 그룹이 사고 예방을 위해그동안 꾸준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내용 등이 태반이다.
문제는 단열재 규제에 대한 방안이다.
너무나 현장과 현실을 무시한 채 탁상공론으로 검토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범정부 TF가 현재까지 내놓은 안은 창고와 공장은 규모와 관계없이 난연 이상 화재안전성능을 갖춘 마감재와 단열재를 사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600㎡ 이상 창고와 1천㎡ 이상 공장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규제를 건축물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창고와 공장에서 전면 시행토록 한다는 것이다.
샌드위치패널의 내화성능 기준도 난연에서 준불연으로 강화한다.
대통령까지 직접 챙기는 사안인 만큼 빠르게 대책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은 이해하나, 단열 전문가와 업계의 견해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채 졸속으로 진행된 주먹구구식 대책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단열재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각 제품별로 용도와 효용, 가격 등 장단점을 파악한 후 현장 상황의 적합여부를 정리하는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여기에 단열재 업계의 신제품 개발 상황과 화재 안전에 대한 대책도 파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열재 업계와 전문가, 국민이 참여해 단열재의 실질적인 문제와 대처 방안 등을 위한 공청회나 토론회 개최가 전제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소비자와 생산자를 포함한 국민을 무시한 처사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우선 불났으니 최대한 늦게 타는 것만 쓰게 하자는 아주 단세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으로만 비쳐진다.
규제에 앞서 이번 이천 화재 원인이 진정으로 단열재 때문인지, 아니면 이를 운용하는 사람 때문 이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이천 화재는 우레탄폼의 뿜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면서 폭발했을 개연성이 높다.
말 그대로 가스가 가득 차 있는 곳에 순간적으로 대형 폭발이 발생하면서 뿜칠로 마감 해놓은 우레탄폼에 순식간에 불이 붙는 상황이었다.
대형 폭발로 인한 화재는 난연과 준불연 등 단열재 성능과 상관없이 곧바로 불이 붙게 된다.
불이 안 붙는 것은 불가능하며 노출된 우레탄폼에서 사람을 순간적으로 질식시키는 유독가스인 시안화수소가 방출돼 인명 피해를 키웠다.
즉, 이번 같은 대형 화재 사고에는 단열재의 난연 성능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환기 시설마저 갖추지 않아 가스가 차 있는 곳에서 용접 작업을 한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건설 현장의 화재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순간적인 폭발로 인해 불이 붙을 때 유독가스가 곧바로 나오는 우레탄폼이 내부 단열재로 노출돼 인명 피해를 키웠다.
뿜칠 작업으로 마감된 우레탄폼이 아니라 우레탄폼을 철재 제품으로 둘러싼 샌드위치 패널이었다면 화재 번짐과 유독가스 방출도 다소 늦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순간적인 폭발로 인한 화재에는 난연이나 준불연 성능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난연은 700℃에서 5분 정도, 준불연은 700℃에서 10분 정도 불이 붙지 않는 성능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도 실험실에서 단열재를 놓고 일정 수준의 불을 붙여 확인한 결과다.
이번 화재 현장의 불길 온도는 최소 1000℃ 이상으로 소방관이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실 등으로 인해 조금씩 번지는 화재에는 난연, 준불연이 다소 의미가 있으나 이 같은 대형 화재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금 정부의 단열재 규제에 대한 TF 방안은 불이 났을 경우 이왕이면 불이 조금 늦게 붙는 난연 이상을 쓰면 가연제품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현행 규정과 난연 이상 제품만을 사용케 하는 신규 규제에 대한 양자 간의 실질적인 효율성에 대한 비교 분석이 빠져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화재 발생 시 가연 보다는 난연 이상이 좋을 것이라는 사고로만 이번 규제를 시행한다면 국가적으로 더 큰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
유럽 등 선진국이 가연성 단열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사례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화재 발생 시 생겨날 수 있는 가연성 단열재의 피해 보다 난연 제품 사용으로 인한 사람과 자연에 대한 환경 침해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화재는 예방과 대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단열재의 가연성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난연 이상으로 규제하는 것은 기존의 모든 단열재가 소비자 이용이나 환경 측면에서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의 부가적인 조건이다.
현재 상황에서 단열재의 필수 조건을 충족시키지도 못하면서 불에 강한 타령만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 화재처럼 시행해도 큰 효과도 없을 것으로 보이는 대형 화재 상황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
시간에 쫓겨 우선 손쉽게 손 볼 수 있는 단열재만을 주먹구구식으로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과 국가에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
마치 자동차 사고가 자주 발생하니 온 도시를 돌아다니는 자동차를 아예 없애거나 사고 시에도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외형을 철골로 만들어 안전을 확보하자는 논리와 같다.
자동차의 원래 목적인 조속한 이동과 편리성, 가격 효용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안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우를 범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단열재도 원래의 목적인 단열의 성능과 시공의 편의성, 소비자의 가격 효용성 등이 우선돼야 한다.
덧붙여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와 관련한 친환경제품 여부 등도 살펴야 한다.
심층적이고 다양한 여론 수렴 없이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고 무조건적으로 규제를 하는 것은 소뿔을 교정하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형 화재에 대처할 수 있는 난연과 준불연 신제품 등의 개발과 함께 규정화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외면했던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대다수 중소기업 운영자들이 정부가 대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중소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무조건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단열재에 대한 이번 범정부 TF 방안은 자칫 중소기업들의 생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직격탄이 될 수 있는 만큼, 업계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최소한 업계와 전문가, 국민들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방안이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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